KBO 팬을 위한 미국 야구의 뒷이야기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MLB)를 보다 보면 이름이 자주 나오는 팀 중 하나가 휴스턴 애스트로스(Houston Astros)다. 실력도 좋고 우승도 했고… 그런데 왜 이렇게 욕을 먹는 걸까? KBO만 보던 입장에서 보면 좀 뜬금없다. 하지만 과거 몇 년 동안 벌어진 일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왜 전 세계 야구 팬들이 이 팀을 ‘공공의 적’이라 부르게 되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번 글에서는 KBO 입문 팬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둘러싼 네 가지 주요 사건을 차례차례 풀어보려 한다.
1. 조지 스프링어 사건 – “도장 안 찍으면 콜업 없다”
야구에서 ‘콜업(call-up)’이란 마이너리그에 있는 선수를 메이저리그로 부르는 걸 말한다. 문제는 이 시점이 단순한 ‘타이밍’ 문제가 아니라 돈, 즉 수십억 원 차이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핵심은 ‘서비스 타임’
MLB에서는 시즌 중 172일 이상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있으면 1년치 서비스 타임으로 계산된다. 이걸 6년 채우면 자유계약(FA) 자격이 생긴다.
그런데 구단은 교묘하게 171일만 등록해서 FA 시점을 1년 늦춘다. 이건 말 그대로 꼼수다. 그리고 휴스턴은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휴스턴은 2014년 유망주 조지 스프링어에게 7년 2,300만 달러 계약을 제시했다. 조건은 명확했다.
“이 계약 받아야 바로 콜업시켜줌. 안 하면 그냥 마이너에 있어.”
이게 사실이라면 협박이나 다름없다. 스프링어 입장에선 나이도 많고(당시 25세) 하루라도 빨리 FA 자격을 얻고 싶었는데, 이걸 미끼로 계약을 강요당한 셈이다.
물론 이 계약 자체가 ‘완전한 사기’는 아니다. 요즘 구단들은 유망주에게 미리 장기계약을 제시하고, 싸게 묶으려는 시도를 자주 한다. 문제는 휴스턴이 콜업 시점이라는 선수 생사권을 들이대며 강제로 계약을 끌어내려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실제로 스프링어는 계약을 거절했고, 휴스턴은 개막 후 2주가 지나서 콜업했다.
바로 FA 1년 연기 성공.
2. 브래디 에이켄 사태 – 계약금 깎으려다 드래프트 폭망
2014년 MLB 전체 1순위 지명 선수였던 브래디 에이켄. 휴스턴은 그에게 650만 달러 계약을 제안했다. 원래 슬롯머니(기준 계약금)는 790만 달러였지만 서로 합의된 금액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팔꿈치 인대가 작아서 불안해. 돈 깎자. 316만 달러만 줄게.”
에이켄과 이미 계약한 줄 알고 있었던 다른 유망주 제이콥 닉스는 150만 달러 계약을 기다리던 중. 문제는 에이켄 계약이 깨지면 닉스한테도 돈을 줄 수 없다는 사실. 드래프트 룰상, 상위 픽 계약이 파기되면 전체 계약금 총액 자체가 줄어든다.
결국 에이켄과 닉스 둘 다 계약이 깨졌고, 드래프트도 완전히 폭망.
이 일로 휴스턴은 “너무 계산적이다”, “사람을 숫자로만 본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후 브래디 에이켄이 실제로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면서, 결과론적으론 휴스턴의 판단이 옳았던 셈이 됐다. 다만 선수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였을 것이다.
3. 로베르토 오수나 트레이드 – “야구 잘하면 다 용서되냐?”
2018년, 휴스턴은 마무리 투수 켄 자일스를 정리하고 로베르토 오수나를 영입한다. 오수나는 그 당시 가정폭력 혐의로 75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상태였다. 심지어 재판도 끝나지 않았다.
이건 아무리 실리적인 트레이드라도, 휴스턴이 비난받을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실제로 당시 많은 팬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야구만 잘하면 뭐든 용서되냐?”
더 큰 문제는, 구단 수뇌부 중 한 명이 이 트레이드를 두고 기자들 앞에서
“오수나 데려온 건 X나 잘한 일이야”
라는 막말을 했다. 구단은 이걸 덮으려다 들통났고, 결국 해당 인사를 해임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여기서 사람들은 확신하게 된다.
“이 팀은 뭔가 잘못돼 있다.”
4. 사인 훔치기 스캔들 – 악역의 완성
2017년 휴스턴 월드시리즈 우승.
그러나 2년 뒤, 폭탄이 터진다. 팀 전체가 비디오 카메라와 전자장비를 이용해 상대팀의 사인을 훔쳐봤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
일명 ‘사인 훔치기 스캔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투수의 구종이나 코스를 알 수 있었다는 것. 이건 게임을 완전히 뒤집는 치트키다. 야구는 0.1초 차이로 승부가 나는 스포츠니까.
이 사건 이후, 휴스턴은 공공의 적이 되었다.
양키스, 레드삭스와 함께 3대 악역팀 중 하나로 불린다.
심지어 같은 해 우승을 다툰 다저스 팬들은 지금도 이걸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스캔들 이후에도 휴스턴은 계속 강했다. 2022년에도 우승했고, 주전들도 대부분 좋은 성적을 냈다.
그러나 팬들의 기억 속에 2017년 우승은 ‘사기’ 라는 꼬리표를 피하지 못한다.
정리하며: 야구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게임이다
KBO 팬들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까지 치사하게 구단 운영을 해도 되나?”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스프링어 협박부터 드래프트 계약 파기, 범죄 혐의 선수 영입, 그리고 사인 훔치기까지.
휴스턴은 분명히 강팀이다. 하지만 강한 만큼, 그 이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
사실 이건 휴스턴만의 문제가 아니다. MLB 전체가 가진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서비스 타임 조작은 모든 팀이 하고 있고, 재능 있는 선수는 어릴 때부터 저렴하게 묶어두려 한다.
하지만 정도와 방식이 있다.
휴스턴은 그 선을 몇 번이나 넘었고, 야구팬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KBO 팬이 이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건, 단순한 뒷이야기를 넘어서 야구라는 스포츠가 가진 비즈니스적, 윤리적 고민을 이해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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